초딩 때 선생님이 수업을 끝내고 교실밖을 나가면
나는 잽싸게 칠판 앞으로 나가 유행하는 만화를 즐겨 그렸고
그것을 본 친구들은 너도나도 종이를 내밀며 그려달라고 했었지
우쭐 했었어.
고2 새학기가 시작될때 우연한 기회에 미술학원을 들어선 첫날 에서도
자신감은 넘쳐 있었어.
지금 와서 느끼는 건데 그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자만심 이었던 것이 분명해.
아그리파(Agrippa) / 로마시대 뛰어난 장군 / 초상조각의 걸작 / 루브르 박물관 소장
아그리파 라는 듣도보지못한 석고상을 그려보라는 학원쌤의 지시에
나는 얼른 3절 켄트지와 까만 톰보?연필로 그것을 의욕적으로 그려나갔지.
창가의 빛을 듬뿍받은 하얀 물체
꼰대?처럼 생긴 근엄하고도 찡그린듯한 표정.
형태를 잡고 명암을 칠해나가면서 나는 웬지 뜻대로 잘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지.
중간중간 의자에서 일어나 내 그림을 보면서 식은땀이 흐르며 기운이 빠졌어.
그림 보기가 두려웠지
그릴수록 석고상의 얼굴이 연탄가루 묻혀놓은 것처럼 거무튀튀해지고 형태마저도 엉망이고...
한마디로 그림을 너무 못 그린거야.
그리다 만 고3시절 초기 소묘작 / 아폴로
고3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수능은 물론이고 실기시험이 점점 다가오자 난 초조하고 답답했어
그때에 이르러서도 내 그림은 여전히 엉망? 이었던 거야
학원에서 미대 실기시험 대비를 위해 모의 소묘시험 때도
학우들과의 그림 비교속에서 점점 딜레마에 빠져들었지
이래가지고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학원의 그 많은 애들중에 중학교때부터 그림을 그려왔다는 유독 좋아하는 친구가 하나 있었어.
분식점에서 같이 떡라면도 자주 먹었지
내가 그 아이를 좋아한 것은 그애가 아닌 그놈의 그림 스타일을 좋아 했던거야.
속으론 부글부글 끓었어.
난 왜 그림이 안되지.. 하면서 말이야
급기야 난 그 놈의 잘 그린 그림을 하나골라 집에 가져오기까지 하였지.
연구? 하기 위해서 말야
미술학원에 갔다오면 밀린공부를 제끼고 밤늦게까지 사온 이젤과 화판을 펴놓고
그 그림을 분석하고 선 하나하나까지 똑같이 반복해서 끊임없이 따라 그렸지...
실기시험을 앞둔 소묘작(중앙) / 몰리에르
고등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이 시작될 무렵 내 그림에도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어
내가 그렇게 고민하고 내가 원하던 그림스타일?을 이뤄내는데 말야.
남들이 보기엔 보잘 것 없어도 말이지.
확실히 그림이란 것은 집념과 노력으로 꾸준히 그리면 그릴수록 실력이 느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자기소질을 믿고 많이 안그리는 것보다 곰처럼 반복해서 많이 그린다면 말이지
그래도 안되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야.
그것은 어쩌면 공부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험성적이 좋다는 것은 그만큼 남보다 노력을 많이 했을 것이다
새벽3시가 넘도록 자신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코피를 휴지로 틀어막으면서 말이야.
머리가 좋으면?... NO.
나의 고3기억에 아이큐가 140이 넘는다고 항상 자랑했던 똑똑한 그놈은 대학에 못갔다.
책상위에 교과서는 덮어버리고 맨날 교실뒤에서 양말을 벗고 발바닥만 긁던 녀석이었다.
그림이라는 것도 공부와 같이 배워야 할 공식들이 많이 있는 것 처럼 느낀다.
영어나 수학에서 수많은 문법이나 공식들이 있는 것처럼
문법이나 공식을 많이 알수록 문제도 잘 풀 수 있는 것처럼
시력이 좋고 단지 잘 본다고 잘 그려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다시 해본다
아뭏든 잘 그리려면 분명히 공식같은 것이 있는 것같다.
공식이란 표현보단 기법이란 말이 적절하겠지.
파르테논 비너스 / 전지소묘 / 톰보4B
우리가 보기에 잘 그렸다라고 하는 그림들에는 분명 뭔가가 있다
어려서 미술을 일찌감치 시작한 아이는 대부분 그림을 잘 그린다
잘 그리는 것은 재능이 아니다. 꾸준히 노력할 뿐이다.
그것은 대부분 재능이 아니다
오랜시간 많이 그리고 관찰력을 기르고 기법을 많이 체득한 결과다.
그림을 갓시작한 서툰그림들은 잘 그렸다라는 인상을 주기어렵다.
세련된 그림(오랫동안 그린사람)일 수록 잘 그린 것처럼 느껴진다.
잘그린 그림엔 분명 기법들이 존재한다.
그 노하우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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